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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유득공은 중국 문사와의 교유에 매우 적극적이었는데, 이는 서얼 출신이라는 신분적 한계와 병세(並世) 의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서얼 출신으로 조선 사회에서 신분적 한계를 절감했던 유득공은 자신의 시적 역량을 바탕으로 중국 문인과 교유하며 진정한 우도(友道)를 실현하고자 했다. 이때 진정한 우도는 지난 시대의 고인(古人)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幷世] 문인과의 교유를 통해서 이룩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의식을 지닌 유득공은 세 차례의 중국 사행에서 다양한 중국 문인과 적극적으로 친분을 나누었고, 동시대 중국 문인의 시선집을 여러 차례 편찬하였다.
유득공은 1778년에 서장관 남학문의 수행원으로 심양을 다녀왔고, 1790년에는 정사 서호수의 수행원으로 열하를 다녀왔다. 열하 사행에서는 『열하기행시주』와 여러 중국 문사와 교제한 내용을 담은 『난양록(灤陽錄)』을 남겼다. 1801년에 마지막 연행을 하였으며, 중국 문인과의 여러 필담을 『연대재유록(燕臺再遊錄)』으로 남겼다. 세 차례의 사행을 통해 그가 교유한 중국 문사는 대략 60~70여 인에 달한다.
한편 유득공은 3차에 걸쳐 자신과 주변 문인이 접한 중국 문인의 시를 모은 시선집을 편찬하기도 했다. 먼저 육비・엄성・반정균 3인의 시를 선집한 『건연외집(巾衍外集)』을 펴냈다. 1777년에는 숙부인 유금(柳琴)이 북경에서 이조원(李調元)과의 만남을 통해 접한 8인의 시를 보태어 『중주십일가시선(中州十一家詩選)』을 편찬하였다. 그리고 1796년에는 이를 증보하여 『병세집(幷世集)』을 편찬하였다. 여기에는 70여 명의 중국 문인과 함께 일본‧안남‧유구 문인의 시까지 함께 수록해 동아시아의 문인 90인의 시 277수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이는 매우 희귀한 사례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건연외집』(3인)에서 『중주십일가시선』(11인), 그리고 『병세집』(90인)으로 이어지는 편찬 과정은 유득공이 지속적으로 외국 문사와 교류하며 그 시야를 확대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유득공은 동시대 한자 문명권의 지식인과 문예로 적극 소통하였던 바, 본 발표에서는 그 구체적인 양상과 의미를 소개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