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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한십가문초(麗韓十家文鈔)』는 일제강점기 조선에 소개된 이래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선집 중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 선집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창강(滄江) 김택영(金澤榮, 1850~1927)은 당시 문단에서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의 인사로서, 1910년대부터 『여한구가문초』나 『여한십가문초』가 한문학 문단에 알려져 있었으며, 김태준(1905~1949)이 『조선한문학사』에서 언급한 김택영의 ‘구가(九家)’나 1935년 7월 38일에 발행된 《조선일보》에 문일평(1888~1939)이 비판적 입장에서 소개한 김택영의 ‘여한구대가(麗韓九大家)’와 같은 예로 『여한십가문초』나 김택영의 선문관을 논의한 바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루어진 『여한십가문초』에 대한 연구들은 김택영의 제자인 경암(敬菴) 왕성순(王性淳, 1869~1923)이 김택영이 선집한 것을 인수하고 다시 나름대로 축소하고 정리하여 편찬한 것에 충분히 주목하지 못한 편이다. 최근에 Cheng Yuan(袁成)과 Xu Zhang(張旭)(2023)은 김택영이 1906년에 엮은 『여한문선(麗韓文選)』(국회도서관 소장본)을 발견해 소개하면서, 1915년과 1921년의 『여한십가문초』의 주 편찬자가 김택영이 아닌 왕성순이므로, 『여한십가문초』가 왕성순의 편찬 의식과 선문관으로 이루어진 것을 강조하였다.
이번 논의에서는 김택영이 선집한 『여한문선』과 왕성순이 편찬한 『여한십가문초』의 선문관 경향 및 관계 양상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주목하고자 한다. 『여한문선』은 김택영이 광무 10년(1906)에 중국에서 편찬한 필사본 문장 선집으로, 『여한십가문초』의 초본이다. 선발된 문장가로 고려조 문인 김부식과 이제현을 비롯하여 19세기 문장가인 김매순과 근대 문장가 이건창 등 구가(九家)를 수록하였으나, 오로지 김매순의 작품 일부가 누락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건창의 작품이 빠져 있다. 김택영은 오랫동안 조선 문인의 문장 선집의 편집을 도모하였으나, 불가피하게 망명길에서 『여한문선』을 처음으로 완성하게 되었다. 『여한십가문초』는 처음에는 1915년에 출간되었고 중국인 독자에게 인기 있었기에 1921년에 재판되었다. 이 선집의 편찬에 그들의 사제 관계가 드러나 있으나, 『여한십가문초』는 왕성순이 『여한문선』을 소화한 결과 그 나름의 성격과 의의를 지닌다.
이번 논의에서는 김택영과 왕성순이 보여준 각각의 선문 특징과 의의를 확인하기 위하여, 이들의 선문관과 선문 방법, 그리고 선집에 수록된 작품의 문체와 내용을 비교하고자 한다. 『여한문선』은 ‘전통’ 문장 선집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김택영의 개인적인 비평적 안목으로 다채로운 글 234편 이상을 가려 뽑았다. 반면에, 김택영의 작품을 포함해서 『여한십가문초』에는 1915년 발간본에 총 93편, 1921년 재판본에 총 95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두 선집 사이에 10년의 간극이 있으나, 대한제국 말기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두 선집의 의의와 목적이 다른 것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비교를 통해 김택영과 왕성순의 문학관·비평관에 대한 더 확실하고 바른 이해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