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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은 전통시대에 한국인들 누구에게나 주목받는 산이었다. 금강산은 오랜 역사를 가진 불교 사찰들과 함께 계절마다 색다른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경치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금강산 여행을 숙원으로 여겼다. 그러나 강원도 북부에 치우쳐 있고 매우 험한 지형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로 금강산에 접근하여 그 아름다움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나마 조선시대 양반들은 여행에 필요한 음식, 교통, 숙박 등의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수행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금강산 여행을 할 수 있었지만, 이러한 여건이 되지 않는 일반인들은 금강산에 다녀오는 것을 엄두도 내기 어려웠다.
19세기 말에 조선이 개항을 하면서 서양인들도 조선을 여행할 수 있었는데, 금강산은 일부 의욕적인 여행자들의 여행 노정에 포함되었다. 당시 서양인이 서울과 같은 도회지에서 멀리 떨어진 금강산을 여행하려면 커다란 결심이 요구되었다. 아직 서양인의 한국 내륙 여행이 본격화되지 않았던 20세기 초에 그나마 생활 여건이 비교적 잘 갖추어진 서울을 떠나 금강산까지 가려면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당시 영국인 여행자 커즌(Curzon)이 말한 바와 같이, “짐을 나를 동물, 숙소, 음식” 등을 미리 생각하다 보면, 서양인 여행자들은 금강산과 같이 접근이 어려운 곳을 여정에 포함시키기 어려웠다. 그들은 통역자, 짐꾼, 마부도 미리 확보하여 함께 여행해야 했다.
이번 논의에서는 영국인 저널리스트 해밀튼의 금강산 여행기록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는 The Pall Mall Gazette의 특파원으로 조선에 여러 달 머물렀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GLIMPSES OF LIFE IN KOREA (1904)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냈다. 그는 짧은 체류 기간에도 불구하고 금강산을 방문하여 그 내용을 그의 저서에 담았다. 해밀튼은 1903년 강원도 금성에서 독일인이 운영하는 금광을 방문한 뒤 통역자들과 짐꾼들을 데리고 금강산을 방문하였다.
이번 논의를 통해 해밀튼이 금강산에서 어느 곳을 방문하였고, 그곳에서 어떤 생각을 하였는가를 분석하고자 한다. 그는 금강산의 절경과 사찰들의 모습을 자세하게 묘사하였다. 특히 사찰에 대한 그의 서술은 매우 진지하고 체계적이다. 해밀튼은 금강산을 불교의 성지로 이해하여, 장안사, 유점사, 신계사 등 금강산의 주요 사찰에 관심을 기울였다. 무엇보다 사찰의 분포를 염두에 두고 금강산 여행의 노정을 짰던 것으로 보인다.
해밀튼의 금강산 여행이 지니는 의미를 확인하기 위해 다른 서양인들의 금강산 기록과 비교하고자 한다. 캠벨, 비숍, 커즌, 밀러, 게일 등이 한국과 금강산에 보인 관심의 내용과 견주는 가운데 해밀튼의 금강산 여행이 지니는 특징을 좀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행 노정, 사찰 및 자연 묘사의 특징 등을 중심으로 비교하여 당시 서양인의 금강산에 대한 인식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