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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발표는 1920년대 동아일보에 번역 소개된 사회민주주의론과 그 정치적 함의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서구 및 일본의 사회운동 및 사회주의 사상의 전개와 관련하여 식민지 조선 민족운동과 사상의 세계사적 특이성을 해명하려 한다.
동아일보는 창간 초기부터 조선 민중운동의 대변지임을 표방할 정도로 정치적 성향이 강했다. 물론 동아일보 그룹은 정치조직이 아니었기 때문에 명확히 형성된 것도 아니었고, 시기에 따라 구성원도 일정하게 변화하였다. 1920년대 초반에는 상해파 고려공산당 국내부(국내상해파)가 동아일보의 논지에 깊이 개입했고, 1924년에서 25년에는 홍명희 그룹이 잠시 논지를 주도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1925년 4월부터는 경영을 넘어 편집과 논지에서도 송진우의 주도권이 강화되어 1936년까지 지속되었다.
영국노동당 지도자인 Arthur Henderson이 1918년 간행한 The aims of Labour 중 일부가 1920년 4월과 5월, 동아일보에 번역되어 실렸다. 당시 식민지 조선에서는 유럽으로의 여행과 유학생도 거의 없었고, 조선인의 언론사도 이제 시작이라 인적 물적으로 대단히 낙후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 서쪽 끝에서의 논의가 아시아 동쪽의 끝인 조선까지 전달되고 받아들여지는데 얼마 걸리지가 않았다. 또한 단순히 책 소개 차원에서 번역한 것이 아니었다. 동아일보를 이끄는 주도자들은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만 선별 번역하면서, 이를 운동의 사상 이념적 기반과 지침으로 활용하려고 했다.
1922년 12월 조선청년회연합회가 주도가 되어 물산장려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그리고 1923년 초반 물산장려운동의 성격과 찬반을 둘러싸고 당시 사회주의자들 내부에서 동아일보를 주 지면으로 치열하게 논전을 전개했다. 당시 물산장려운동을 적극 지지하던 국내상해파 주류세력인 나경석은 Karl Johann Kautsky 등 독일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주장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었다. 카우츠키가 1918년 출간한 Die Diktatur des Proletariats는, 1919년 H. J. Stenning에 의하여 The Dictatorship of the Proletariat 제목으로 영역되었고, 이 영역본을 저본으로 1921년, 쿠루하라 게이쓰게(来原慶助)에 의해 『民主政治と獨裁政治』 제목으로 일본에서 일역 출간되었다. 나경석은 이 책을 비롯한 카우츠키와 독일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물산장려운동론 및 협동조합론을 전개했다. 한편 카와카미 하지메(河上肇)의 제자인 이순탁은 카와카미의 글들을 동아일보에 번역 소개하였고, 그 외에도 사회민주주의와 관련한 여러 글들을 번역 소개하였다.
이들 모두는 식민지 조선의 미개발되고 노자계급이 미성숙한 현실 속에서, 조선민족 내부의 계급투쟁보다는 민족문제를 중심에 두고 민족적 협동을 추구했다. 경제건설을 위해 민족자본가와의 일정한 협동도 불가피한 것으로 파악했다. 때문에 그들은 동아일보의 민족주의자들을 비롯해서 민족주의세력과 적극적으로 연합하려 했다.
한편 1920년대부터 본격화된 일본 무산정당운동의 흐름도 동아일보에 적극 소개되었다. 그 전사를 이루는 정치연구회의 동향뿐만 아니라, 사회민중당 등 명백히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한 무산정당계열, 후에 사회대중당으로 합류하는 다양한 비 공산 무산정당 계열의 동향과 주장도 주요 대상이었다. 이들에 대한 관심은 무산정당의 성장을 통한 일본사회의 민주주의 진전, 그에 따른 조선 식민정책의 변화를 기대한 것이었다. 동시에 이런 탐구를 통해 합법운동의 필요성과 내용, 민주주의 민족운동의 내용과 영역을 확대하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