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8 Oct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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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회경제사』(1933)에 나타난 백남운의 유물변증법 수용과 유물사관의 재구성

18 Oct 2024, 14:50
40m
Room 104, C1 Building

Room 104, C1 Building

Speaker

MyungJae Kim (서울대학교)

Description

본 발표의 목적은 『조선사회경제사』(1933)에 나타난 백남운의 유물사관과 그 논리가 1920~30년대 초반 유물변증법의 수용 속에서 어떻게 재구성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일본에서의 독일 사회과학과 철학이었으며, 그 매개는 일본 강좌파 사회주의자인 하니고로(羽仁五郞)였다.
주지하듯이 식민지 조선에서는 1920년대 중반을 전후로 소련과 제국 일본을 경유한 유물변증법과 관련된 저서들이 유통되었으며 유물사관을 둘러싼 논쟁이 가열되었다. 일본 도쿄상과대학에서 유학하여 1925년부터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근무하기 시작한 백남운 또한 이와 같은 지적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조선사회경제사』에서 자신의 유물사관과 역사방법론을 설명할 때 빈번히 언급하고 있는 저서가 바로 하니고로의 『轉形期の歴史学』(1929), 『歴史学批判叙説』(1932)였다는 점이다.
하니고로는 독일에서의 유학 경험과 미키기요시(三木淸)와의 학문적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역사학과 유물사관 속에서 인간의 능동성에 주목하였다. 1920년대 중·후반 이후 일본의 사회주의 운동과 이론에 대한 코민테른의 권위가 강해지자 강좌파를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자들에게 유물변증법 이해에 있어서 하부구조와 생산력을 강조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러나 독일의 사회경제학과 철학을 기초로 유물변증법을 이해한 하니고로는 서구 사회와 대비되는 일본의 후진성을 의식하면서도, 역사 속 일본인이 그와 유사한 역사발전 법칙 하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하니고로는 일본 사회 내의 평민과 프롤레타리아 등 하위 주체의 혁명적 전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는 한편, 일본사에서 역사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창출하여 일본 사회의 역동성을 부각하고자 하였다. 다만 여기서 맹점은 그가 아시아 일반·식민지 사회를 일본 사회와 구별하고 그 停滯性과 早熟性 또한 강조하였다는 점이다.
백남운은 1910~20년대 국가 중심의 독일 사회경제학과 철학이 유행하던 일본 유학을 통해 제국과 구별되는 조선 사회와 경제의 식민지적 성격을 역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특히 일본의 경제사학과 진화론을 경유한 사회주의를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식민지 조선 사회와 역사를 탐구하였다. 그러나 1928년 12월 테제를 전후로 식민지 조선에서 벌어진 일련의 유물/유심논쟁과 유물변증법 이해에서 다수의 사회주의 운동가들이 하부구조를 강조하는 경향이 강화되었다.
이때 백남운은 유물변증법 속의 맑스-레닌주의에 따른 하부구조와 법칙성을 인정하면서도, 식민지 사회와 그 역사에서 경제적·역사적 인간을 발견하고 그 능동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백남운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익숙한 독일-일본의 사회과학 및 철학적 성격이 농후하며 일본사에서의 하위주체와 그 혁명적 가능성을 강조한 하니고로의 저서가 전략적인 참조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이렇듯 백남운은 독일과 일본, 제국과 식민지의 경계를 넘어선 유물변증법 수용과 식민지 주체의 능동성 확보라는 과제를 하니고로라는 매개를 통해 수행한 것이었다. 다만,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백남운은 제국의 사회주의자이자 강좌파로서 하니고로 또한 아시아 혹은 식민지 사회에 대한 이른바 ‘사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의식하고, 그의 유물사관을 비판적으로 수용한 결과가 바로 『조선사회경제사』 였다고 할 수 있다. 근대 한국의 사회주의 사상과 사학사에서 백남운이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할 때, 이러한 시각은 세계사 속의 한국학을 재위치시키는 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Presentation materia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