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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 성호(星湖) 이익(李瀷)(1681~1763)의 문집 『성호사설(星湖僿說)』 제9권 「人事門」 ‘생삼진륙변(生三進六辯)’에 ‘생삼진륙(生三進六)’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망족(望族)들이 모두 이 번호를 수치로 여기어 피하므로 반드시 미천한 자를 뽑아 ‘생원의 제3(生三), 진사의 제6(進六)’을 만든다. 이 폐습이 어느 시대로부터 일어났는지 알 수 없다...전하는 속담에 의하면 ‘예전에 생원의 제3이나 진사의 제6을 차지하는 자는 흔히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한다” 라는 내용의 ‘생삼진륙’ 기피 습속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이는 문벌에 의해 능력검증체계가 왜곡되는 과거제도 폐단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생삼진륙(生三進六)’ 기피 습속에 대한 『성호사설(星湖僿說)』의 기록은 신뢰할 수 있는가? 습속이 실제로 존재하였는가? 습속이 존재하였다면 ‘전하는 속담(諺傳)’ 정도로 기록된 기피 사유(多不吉)는 신빙성이 있는가? 속설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존재하는가? 과연 당대인들이 믿은 속설은 허구인가 실제인가?
이 연구에서는 사료의 내적 비판을 통해 실증적 연구를 시도한다. 문헌 기록이 반드시 역사적 진실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는 근거가 없으므로 사료의 기술(記述)을 분석하고 신뢰할 수 있는 근거를 조사하고자 한다.
먼저 『성호사설(星湖僿說)』 기록의 정확성을 확인하기 위해 성호가 썼음에도 기피 습속의 대상인 ‘생삼진륙’에 대해 오히려 ‘극선(極選)’이라는 상반된 진술을 보여주고 있는 윤돈(尹暾) 행장을 검토한다. 또 ‘장원 선발 시 피봉(皮封)을 개탁(開坼)’ 하는 문벌검증 절차의 제도적 실현가능성을 조사함으로써, 출방(出榜) 전 피봉 정탐을 통해 미천한 자로 ‘생삼진륙’을 만든다는 『성호사설』 기록의 정확성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다음으로 ‘생삼진륙’ 기피 습속이 기록된 문헌들을 검토하여 그 기원과 양상의 변화, 습속의 보편화 정도를 살펴본다. 과거제의 폐단을 기록하고 있는 복수의 사료에 대한 교차 검증을 통해 상당 기간 다양한 모습으로 변용되어 온 ‘생삼진륙’ 기피 습속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기록의 대부분은 개별적·단편적 사례에 대한 전언정보(傳言情報)의 특질을 갖는 한계성이 있다.
‘생삼진륙’ 기피 습속과 연루된 조선 후기 과거제도 폐단의 전모를 구체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사마방목(司馬榜目) Database를 원용하여 실증적 분석을 시도한다. 사마방목은 조선시대 태조 2년부터 고종 31년까지 실행된 230회의 생원·진사시 합격자 기록이다. 조선시대 全 시기 과거제도와의 관련 속에서 ‘생삼진륙’ 개별 data를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미천한 자(微賤者)들의 출신 구성을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세간에 속설로 전해지는 기피 사유(前古去生三進六者多不吉)의 신빙성 여부를 검증한다. 다불길(多不吉)을 판단하는 준거가 명확치 않으므로 다양한 가설을 세워 검증을 시도한다.
본고에서는 ‘생삼진륙변’의 사료비판을 통해 기록의 신뢰성을 검증해 나가는 과정에서 사료의 진위와 가치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조선 후기 과거제도 운영의 실상을 궁구(窮究)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