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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에 작성된 세 편의 시권(試券), 즉 과거 답안지를 통해 당시 조선 사회가 직면하고 있었던 정치사회적 현안이 무엇이었는지를 정밀 조명한다. 세 편 가운데 두 편은 장원 합격자의 답안이며, 나머지 한 편은 34명 가운데 29위로 합격한 인물의 답안이다.
이들 답안지는 단순히 합격권에 든 모범 답안을 넘어 왕이라는 절대 권력자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시대적 이슈에 대안을 제시한 것이라는 점에서 17세기 조선의 청사진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 특히 그 원본이 존재함으로써 사실성을 한층 더해주고 있다.
첫째, 박세당(朴世堂)이 1660년 증광 문과에서 장원으로 합격할 때 작성한 답안지이다. 이것은 국가의 재정운영과 관련하여 그 주도권을 임금과 신하 가운데 누구에게 부여하는 것이 합당한가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 것이며, 박세당은 관료주도형을 제안하여 장원의 영광을 획득했다. 군권과 신권의 길항성을 엿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 장면으로 포착된다.
둘째, 조창기(趙昌期)가 1660년 증광 문과에서 작성한 답안지이다. 나라의 부강책(富强策)을 묻는 시험에서 응시자는 부강을 단념하고 인의와 도덕을 회복할 것을 제안하여 합격하게 된다. 질문의 취지를 완전히 벗어난 답안을 합격권에 들인 것이고, 이는 부국강병을 금기시했던 주자학자들이 군주를 조련 또는 순화(馴化)시키는 장면으로 해석할 수 있을 만큼 파격적이었다. 이 또한 박세당의 시권과 마찬가지로 군권과 신권의 길항성의 산물로 파악할 수 있고, 당시의 군주가 군약신강(君弱臣强; 군권은 약하고 신권은 강하다는 뜻)의 주인공인 현종이라는 점도 주목할만한 대목이다.
셋째, 조덕순(趙德純)이 1690년 식년 문과에서 장원 합격할 때 작성한 답안지이다. 당시 서울에는 도적이 출몰하여 국가적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었는데, 바로 이것이 출제된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응시자 조덕순은 서울 백성들과의 대화를 통해 현안이 무엇인지를 청취하여 출제의 가능성을 염두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과거가 현실의 문제와 매우 밀착되어 있었음을 웅변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이 글은 17세기 조선의 과거는 현란한 문장을 다투는 문예의 경연장이 아니라 국가의 운영방향을 결정하고, 초미의 현실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지혜 수렴의 장치였음을 진단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