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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발표는 식민지 인의 이주 경험에 관심을 가졌던 제국 일본의 작가와 식민지 조선의 작가의 ‘남양(南洋)’(동남아시아) 표상을 비교 검토하여 식민지/제국의 ‘국민 문학’의 남양 표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자 한다.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그 전쟁이 아시아태평양전쟁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식민지 조선에서는 ‘남양’을 주제로 한 시와 소설이 다수 발표되었다. 식민지 조선의 ‘국민문학’에서 남양에 대한 관심의 고조는 전쟁을 통해 남양을 대동아공영권의 일부로 포섭하고, 동양의 실지(失地)로서 회복하려고 하는 제국 일본의 전쟁 논리와 연동한 것이었다. 중일전쟁 이후의 남양을 주제로 한 ‘국민문학’ 중 상당수는 전쟁의 당위성을 주장하거나, 남양의 ‘야만성’을 강조하면서 ‘국민’으로서 조선인의 위치를 확인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런데 이 시기에는 실제 남양으로 이민을 간 조선의 민중이 적지 않았다. 1939년 이후 남양청의 노동자 모집으로 남양군도로 이주한 조선인이 늘어났고, 아시아 태평양 전쟁 발발 이후에는 조선인이 노무자로서 남양으로 계속 동원되었다. 즉, 식민지 조선에서는 남양은 대동아공영권에 포함된 지역의 일부인 동시에, 이민, 노동, 동원의 장소였다. 식민지 조선의 작가들이 조선인의 남양 이민, 동원 경험을 접하게 되면서, 작품의 ‘남양’ 표상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이 발표는 대동아공영권이나 전쟁의 당위성을 강조한 식민지/제국의 ‘국민문학’에 나타난 ‘남양’ 표상과 실제 조선인의 이주 및 동원 경험을 접한 작가의 작품 사이의 거리를 검토하고자 한다. 발표에서는 우선 중일전쟁 및 아시아태평양전쟁 시기 식민지/제국의 남양 표상과 조선인의 남양 이민 경험을 검토하겠다. 이를 바탕으로 식민지 조선의 작가 김사량(1914~?)과 안회남(1909~?), 그리고 조선 및 남양에 체류 경험이 있는 일본인 작가 나가지마 아쓰시(中島敦, 1909~1942)의 작품을 비교 검토한다.
김사량은 1930년대 제국 일본에 체류하면서 일본의 조선인 이주자를 다룬 작품을 다수 창작하였다. 그의 「십장꼽새(親方コブセ)」(1942.1)에는 남양으로 이민을 가게 된 조선인 노동자들이 등장한다. 나카지마 아쓰시는 유년 및 청소년 시절 조선에 체류하였으며, 식민지 조선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발표하였다. 특히 그는 1941년부터 1942년까지 남양청에서 일하면서 남양을 주제로 한 작품을 발표하였는데, 남양 체류 시 시마키 겐사쿠(島木健作)의 『만주기행』(1940)에 대해 언급하는 등, 남양에 대한 그의 관심은 조선에 대한 그의 관심과 겹쳐 있었다. 마지막으로 징용 경험을 가졌던 안회남이 해방 이후 발표한 「불」(1946.8)에는 징용되어 남양에 갔다가 해방 후 조선으로 귀환한 조선인의 경험과 목소리를 재현하였다.
조선인 이주노동자에 대한 관심에서 남양으로 떠나는 조선인 노동자의 모습을 포착한 김사량, 조선 체류와 남양 체류를 교차한 일본인 작가 나카지마 아쓰시, 일본 징용 경험을 바탕으로 남양 귀향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인 안회남. 이 발표는 1945년 이전 한국인의 남양 이주 및 동원 경험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한국과 일본 작가의 ‘남양’ 표상들을 비교 검토하면서, 식민지/제국의 ‘국민문학’과 어긋난 ‘남양’ 표상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