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8 Oct 2024
VNU Hanoi, University of Languages and International Studies
Asia/Ho_Chi_Minh timezone
welcome!

또 하나의 남민전: 냉전 시대 한국 사회운동의 베트남 인식

18 Oct 2024, 17:20
30m
Seminar 1, C1 Building

Seminar 1, C1 Building

Speaker

Jong-wook Hong

Description

제2차 세계대전 종결 이후 탈식민과 냉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과 베트남 두 나라는 모두 분단 국가가 되었다. 1960년대 중반 남북한은 베트남전쟁에 각각 군대를 보냈다. 동아시아 냉전 질서 속에서 한국과 베트남은 대칭적 관계였다. 남한 정부는 베트남 전쟁을 자유진영 대 공산진영의 대결로 선전하며 국민의 각성을 촉구했다. 남한 정부는 1970년대 중반 남 베트남 패망을 체제 위기를 받아들이고 유신 독재 체제를 강화했다.
1979년 10월 유신 반대 데모가 한창이던 시점에서 박정희 정부는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즉 남민전 사건을 발표했다. 남민전은 이름부터가 1960년 12월에 결성된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NLF)’에서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정부는 남한의 남민전이 베트콩식 도시 게릴라를 기도했다고 설명했다. 남한 남민전의 강령, 투쟁 방식, 그리고 북한과의 관계 설정은 명백하게 베트남 남민전을 모델로 한 것이었다.
남한 남민전의 지도자 이재문은 일찍부터 베트남을 비롯한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논설을 여러 번 발표한 바 있다. 이재문은 베트남의 민족운동, 사회운동에 관한 지식을 일본 혁신 지식인의 논설 등을 통해 얻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냉전 시대 금단의 지식이 유통되던 동아시아 네트워크를 상정할 수 있다.
베트남 남민전은 북 베트남 정부와 독립된 조직을 표방하고, 공산주의 진영을 비롯한 우방에 독자적인 외교 사절을 보내기도 했다. 이러한 조직 노선은 남한의 사회운동에도 참고가 되었다. 남한의 남민전 역시 북한 정부를 존중하면서도 이와 구별되는 독자적인 전위 정당 결성을 지향했다.
이번 발표에서는 두 나라에 존재한 남민전을 고리로 삼아 남한 사회 운동의 베트남 전쟁, 베트남 혁명 인식을 살피겠다. 첫째, 1954년 제네바 회의 이후 동아시아 냉전 질서 속에서 베트남과 한국의 위치, 둘째, 이재문을 중심으로 한 남한 남민전 주체의 베트남 혁명, 남베트남 남민전 인식, 셋째, 남한 남민전과 남베트남 남민전 조직과 활동의 공통점과 차이점 등에 분석의 중점을 두겠다. 이를 통해 냉전 시대 한국과 베트남의 상호 교류와 인식의 일단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Presentation materia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