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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발표의 목적은 조선시대 여성들이 서울에서 운영한 ‘여인전(女人廛)’의 종류를 통해 사적 공간의 ‘경계’를 넘어 공적 영역에서 활동한 여성의 존재를 찾아내는 데에 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여인전에서 세금의 일환으로 부담한 바느질 부역을 조명하여 젠더 노동의 의미를 알아보고, 여성이 사적 공간에서만 활동했다는 기존의 통념도 재검토하고자 한다.
여인전이란 한양에 자리한 시전(市廛) 중 하나였다. 시전이란 조선시대에 국가의 허가를 받고 운영된 상설 가게다. 오늘날처럼 일반인을 대상으로 물건을 팔았는데 아무나 마음대로 시전을 열 수 없었다. 반드시 국가의 허가를 받아서 특정 품목의 판매권을 받아야 했고, 그 대가로 세금을 냈다. 건물 임대료와 영업세를 냈으며, 왕실과 각 관청에서 필요한 물품을 돈을 받고 공급했다. 이밖에 각종 잡역도 담당했다. 18세기 후반에 여인전은 약 120개 시전 중 18개(15%) 정도였고, 대부분 과일, 채소, 반찬 등을 팔았다. 규모가 영세했으나 일반 시전과 마찬가지로 세금을 냈다. 주로 왕실과 각 관청에서 필요한 물품을 돈을 받고 공급했다. 과일 가게라면 각종 국가 행사가 있을 때 관청에 과일을 공급하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관청에서 가격대로 물건값을 주지 않거나 아예 값을 치르지 않는 경우가 자주 생겼다.
여성 시전 상인은 국가에 부역도 제공했다. 대표적으로 바느질 노동이며, 이들을 ‘여성 바느질꾼 [여봉조군(女縫造軍)]’이라 불렀다. 여성 바느질꾼은 주로 휘장, 방석이나 깔개, 장막, 물건 보관 케이스(case) 등을 제작할 때 동원되었다. 여인전에서 바느질꾼을 마련한 방식은 사료의 부족으로 아직 명확하지 않는데, 여성 일꾼을 고용해서 보내거나 직접 부역을 감당했을 가능성이 모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여성의 바느질 노동에 대해서는 가난한 양반 여성들의 생계 유지 수단 정도로 알려져 왔다. 이에 비해 여성 시전 상인이 부담한 바느질 부역 노동은 잘 알려지지 않다.
이 발표는 여인전과 여성 시전 상인의 존재를 통해서 여성이 국가 경제의 일원으로서 어떻게 존재했는지를 보여줄 예정이다. 무엇보다도 사적 노동으로만 알려진 바느질 노동이 세금의 한 형태로 부과된 점에 새롭게 주목했다. 이 발표가 세계 한국학 연구자들과 함께 사적 공간의 경계를 넘어선 다양한 여성의 모습들을 새롭게 논의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