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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종로3가의 현재 모습은 1967년 청계천 복개가 끝날 무렵 건립된 세운상가, 현재는 사라진 청계천 고가 건설, 1968년 낙원상가 건립으로 이어지는 1960년대 서울 도시계획의 결과와 연결되어 있다. 지난 60여 년 동안 세운상가와 낙원상가 등 종로3가는 도시계획의 변화 속에 존치와 철거를 둘러싼 논의가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이 과정 자체가 압축적 근대화, 산업화, 도시화, 고속 성장, 현대 소비문화가 교차하는 서울의 근대화 과정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직선 거리로 500m 거리에 위치한 세운상가와 낙원상가에 대한 기존 연구 다수는 무전기, 라디오 수신기, 진공관 앰프, 스피커, 전축, 녹음기, 오디오 컴포넌트, 노래 반주기, 전기악기와 같은 오디오 매체를 제조, 판매, 수리하는 도심 제조업 공간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러나 이 두 전자-오디오 상가 단지가 자리하고 있는 거대 건축물군은 애초에 의도한 도시정책이나 국가 차원의 계획과 비전과 거리가 먼 탈법과 불법, 비법적 실천이 얽힌 ‘변통’적 방식으로 형성된 독특한 문화-상업 생태계에 가깝다. 정부, 행정이 수립한 경제 계획에 포함되지 않았던 문화적 욕구가 폭발적으로 활성화되면서 성장한 특별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두 상가에서 유래한 전기 장치와 각종 음향장비는 한국에서 전자 기술과 공업이 최초로 오락, 여가, 놀이문화로 사용된 사례다.
현재 종로3가에 자리한 두 상가는 낡은 곳, 도시문제의 주범, 철거를 통해 회복해야 할 거리와 녹지축으로 취급된다. 잠깐이나마 기술 및 창업 공간의 의미가 새롭게 조망되기도 했으나 이 공간에 대한 의미 규정은 여전히 도시 개발 담론 속에서 역사, 환경, 재생 등 다양한 프레임으로 포장되며 끊임없이 표류 중이다. 상가 일부를 철거하거나 수리하면서 서울 도심의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기도 했으나 이 또한 공간 이용자의 일상적 맥락이나 내부적 역량과 거리가 먼 서울시의 도시계획 방향 수정 및 추진이라는 맥락에서 생성, 변경, 편집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즉 이 공간의 ‘처리방식’은 구성 존재들이 아닌, 도시계획을 결정하고 시행하는 주체들을 통해서만 결정되었다. 본 발표는 행정이나 시장지배적 관점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심지어 죽은 것처럼 취급되는 낡은 전기, 전자 상가가 여전히 중요한 일상의 매체 문화를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이 공간의 장소성 변화의 주체를 어떻게 상정하고 재구성해야 할지 살펴본다.